우리나라 숙박업 역사관
- '우리나라 숙박업 역사관'에서는 현재 확인이 가능한 시대별 주요 숙박업소들을 소개합니다.
객사(客舍)는 고려 및 조선 시대 각 고을에 설치되었던 관사(館舍)로, 정당(正堂)을 중심으로 좌우에 익실(翼室)이 배치되고, 익실은 외방 사신이나 여행하는 관료 또는 외국에서 오는 사신이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낙안객사는 1450년 낙안군에 부임한 군수 이인이 1451년 옛터에 의거하여 건립한 객사입니다.
객주(客主)는 다른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거간하며, 숙박, 금융 등 여러 가지 부수 기능을 담당한 상인을 말합니다. 객사(客舍)가 공공에서 운영했던 숙소였던 반면, 객주(客主)는 민간에서 숙소를 운영했던 상인을 의미합니다. 김만덕은 영조 38년(1762)부터 객주로 활동하였습니다.
주막(酒肆)은 객주(客主)나 여각(旅閣)과 마찬가지로 민간에서 운영하던 숙박시설이지만, 상인들 뿐만 아니라 여행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었던 주막으로, 그는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여관(旅館)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인과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 내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숙박시설로, 기존의 여각(旅閣)이나 주막(酒肆)을 개보수하여 사용했었습니다. 유선관은 대흥사를 찾는 방문객과 수도승을 위해 1914년 지어진 조선 말기 양식의 여관입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일본 ‘료칸’의 원형을 모방한 여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신축된 여관들은 다다미 바닥의 객실과 식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보성여관은 일제 강점기 시절 벌교가 교통의 요지로 부상하면서 일본 주택 양식으로 지어져 여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본인 호리 히사타로와 아들 호리 리키타로가 1888년 인천항 인근 조계지(현재의 차이나타운)에 11실 규모의 대불호텔을 개관하여 서울로 출입하는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했습니다. 1899년 경인선 개통으로 인천에서의 숙박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대불호텔은 중국 음식점으로 쓰이다가 1978년 결국 철거됩니다.
고종 황제가 1902년 덕수궁 인근, 현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부지에 당시 황실 전례관이었던 프랑스인 앙투아네트 손탁 여사를 위해 지어 하사한 25실 규모의 호텔입니다. 1909년 손탁 여사가 한국을 떠난 이후, 경영난을 겪기 시작하던 손탁호텔은 조선호텔이 개관하면서 1917년 결국 영업을 중단하기에 이릅니다.
최초의 조선호텔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의해 환구단이 있던 소공동에 64실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해방 후에는 미군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정부가 이를 인계받았습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고, 6/25 때에는 미군 휴양시설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조선호텔 바로 뒤편에 한국에서 기업가로 활동하던 일본인 노구치 시타가우가 1938년 개관한 111실 규모의 호텔입니다. 그가 허름한 복장으로 조선호텔을 찾았다가 쫓겨난 후, 바로 뒤편의 부지를 사들여 조선호텔의 두배인 8층 높이로 호텔을 건립했습니다. 1963년 조선호텔과 함께 국제관광공사로 이관되었습니다.
1955년 현재의 앰배서더 호텔 위치에 민간 기업인 서현수가 2층에 19실 규모의 금수장을 개관했습니다. 1965년 명칭을 앰배서더로 바꾸었고, 1975년에는 450실 규모의 대규모 호텔로 재개장했습니다. 1987년 글로벌 브랜드 Accor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국내 민간 자본이 건립한 최초의 호텔입니다.
1961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은 미군을 위한 위락시설로 워커힐호텔의 건립을 추진했는데, 국제관광공사가 출범하자 사업을 이관합니다. 그리고 1963년 객실 5동과 빌라 13동, 전망대와 차고 등 26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워커힐호텔이 개관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나이트클럽, 볼링장, 실내수영장이 도입되었습니다.
1964년 남산에 아시아반공연맹(현재 한국자유총연맹)의 자유센터가 들어섭니다. 이때 5층 규모의 본관 옆에 17층 규모의 자유회관이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숙소로 함께 건립됩니다. 1966년 국제관광공사가 이를 인수하여 개축 후 1967년 타워호텔로 개관했으나, 바로 매각에 착수했고 1968년 공성산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조선호텔을 넘겨받은 국제관광공사는 새로운 호텔들이 들어서며 경쟁력을 잃어가던 조선호텔을 철거하고 대규모의 호텔로의 재건축을 추진했습니다. 1970년 미국의 아메리칸 항공과 함께 19층에 504실 규모의 새로운 조선호텔을 개관했고, 1981년 글로벌 브랜드인 웨스틴을 도입하며 웨스틴 조선호텔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1973년 롯데는 국제관광공사로부터 반도호텔을 인수하면서 인접한 국립중앙도서관 부지까지 함께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건물들을 철거한 후, 1979년 38층 규모의 롯데호텔 본관을 신축했습니다. 1980년에 면세점,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는 신관을 증축하여, 현재 1,015실 규모의 초대형 호텔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972년 남산 외인 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남산에 호텔 건립을 지시하면서, 1973년 한일 합작으로 서울 미라마 관광회사가 설립되어 ‘남산호텔’의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611실 규모의 ‘하얏트 리젠시 서울’로 1978년 개관한 호텔은 대대적 리모델링을 거쳐 1993년 ‘그랜드 하얏트 서울’로 변경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일제 강점기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원이 있던 장충동 부지에 1967년 청와대 영빈관을 건립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1973년 관광 민영화 추진 시기에 삼성에 이를 넘기고 관내에 새 영빈관을 건립했습니다. 삼성은 인수한 기존 영빈관 옆에 464실 규모의 신라호텔을 증축하여 1979년에 개관했습니다.
휴양콘도는 1982년 ‘관광사업진흥법’을 통해 법제화된 숙박업소 유형입니다. 객실에 취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회원모집과 분양이 가능합니다. 서구권에서 가장 유사한 유형은 ‘타임셰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205실 규모로 개관한 용평 콘도는 초창기 휴양콘도의 초기 사례입니다.
가족호텔은 1986년 ‘관광사업진흥법’을 통해 호텔의 하위 분류로 법제화되었습니다. 객실에 취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회원모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휴양콘도와 유사하지만, 분양이 불가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1990년 1,392실 규모로 개관한 무주 덕유산 리조트는 가족호텔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전통호텔은 한국 고유의 건축 양식을 갖춘 숙박업소 유형으로 1986년 ‘관광사업진흥법’을 통해 호텔의 하위 분류로 법제화되었습니다. 다만, 기존의 한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을 신축하여 사용합니다. 1991년 26실 규모로 개관한 씨에스 호텔 앤 리조트는 전통호텔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수상호텔은 1982년 ‘관광사업진흥법’을 통해 호텔의 하위 분류로 법제화되었으며, 1999년 ‘관광진흥법’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수면 위의 선박을 숙박업소로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2002년 부산 해운대에 53실 규모로 개관하여 2003년 폐업한 페리스 플로텔이 수상호텔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농어촌민박은 농어촌지역 및 준농어촌지역의 단독주택을 활용하는 숙박업소 유형입니다. 1995년 ‘농어촌정비법’을 통해 법제화되었고, 2005년 신고제에서 지정제로 변경되면서 현황 파악이 용이해졌습니다. 2005년 6실 규모로 개관한 대관령 아름다운 펜션은 지정제 농어촌민박의 초기 사례입니다.
호스텔은 2009년 ‘관광진흥법’을 통해 호텔의 하위 분류로 법제화되었습니다. 배낭 여행객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숙박업소라는 점에서 유스호스텔과 공통점이 있지만,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2009년 31실 규모로 개관한 휴 호스텔은 호스텔의 초기 사례입니다.
도시민박은 2011년말 ‘관광진흥법’을 통해 법제화된 숙박업소 유형으로, 도시지역의 주택을 활용하는 숙박업소입니다. 주거지역에서 영업이 가능한 이점이 있는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져야 하는 제한이 있습니다. 2012년 7실 규모로 개관한 스튜디오 41은 도시민박의 초기 사례입니다.
소형호텔은 2014년 ‘관광진흥법’을 통해 호텔의 하위 분류로 법제화되었습니다. 최소 객실수 기준을 완화하여 호텔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신설되으나, 소형 숙박업소가 호텔로 개관하는 것의 이점이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2014년 24실 규모로 개관한 하슬라 뮤지엄 호텔은 소형호텔의 초기 사례입니다.
생활숙박은 2012년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른 숙박업소들 중, 객실에 취사 시설을 갖추어 장기체류 수요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를 분리한 것입니다. 모호한 법적 기준 때문에 주택 겸용으로 분양된 사례들이 많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호텔 더 마크 해운대는 2015년 100실 규모로 개관한 생활숙박입니다.
의료호텔은 2014년 ‘관광진흥법’을 통해 호텔의 하위 분류로 법제화되었습니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의 편의를 증진시켜 의료관광을 활성화하고자 신설되었지만, 까다로운 자격 요건 때문에 활성화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호텔 베르는 2023년 40실 규모로 개관한 의료호텔입니다.